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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에 대하여미술/조각 2020. 11. 1. 02:16
2020 지역연계형 청년예술활동 지원사업 <스퀘어 프로젝트>
프로젝트 소개:
www.naruart.or.kr/bbs/board.php?bo_table=culture04&wr_id=113
광진문화재단(나루아트센터)
고객과 예술을 연결하는 문화나루터 광진문화재단입니다
www.naruart.or.kr
내 인터뷰:
http://www.naruart.or.kr/bbs/board.php?bo_table=culture04&wr_id=112 www.naruart.or.kr/bbs/board.php?bo_table=culture04&wr_id=112
광진문화재단(나루아트센터)
고객과 예술을 연결하는 문화나루터 광진문화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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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하, Vanilla, 사암, 80x73x123cm 지금 전시하고 있는 이 작업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실 처음에 이 광진구 사업에 지원했을 때는 이런 작업을 하려고 했던게 아니였다.
그런데 작업 제작 지원금이 무려 500만원 정도 라는 점, 작업 주제에 대한 자유도가 주어졌다는 점(보통 이런거는 지역성이나 시민 참여성 프로젝트를 유도함), 그리고 갑작스런 코로나의 상황으로 본래 하려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일단 제작비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마자 든 생각은 커다란 돌조각을 하고 싶다는 것
항상 꿈처럼만 생각했는데, 이번이 기회지 않을까 싶었고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한 멘토링 수업에 오신 분이 너무 지역성 공공성에만 치우치지 말고 우리는 결국 예술가니깐 자기 사심이 들어간 작업을 하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 착하고 영혼리스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 시간낭비 혈세낭비지 내가 하고싶은 거 해야겠다 생각함
돌을 구하러 전에 작업에 사용될 돌을 구매했던 돌공장에 들렸는데
밖에 있는 돌덩이 하나를 그냥 주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으헝헝 은혜 감사합니다 하고 신나게 왔지만
사실 그 커다란 1톤짜리 돌을 어떻게 조각할지 막막한 구석도 있었고 설레기도 했고 머 쫌 복잡했음
그러고선 석조하는 대학원 동기에게 연락해서 나 즉흥적인 돌조각 만들건데 도와주세요 했더니
돌조각이 어케 즉흥적이냐며 나에게 스케치를 절대 강요
그래서 스티로폼으로 대강 만들어가서 회의하고 진행하기로 하고
어느새 나는 김포 시골구석에서 돌을 깎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걸 왜 했냐구여?
나는 재료와 관계를 맺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문신의 작업노트를 읽을 때 그에게서 자기가 사용하는 재료에 대한 엄청나게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게 너무 멋졌고 이런게 진정한 조각가구나 싶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따로 석고 조각도 진행하고 있는데
돌도 해보고 싶었던 거는 일단 돌이 간지보스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요즘에 느끼는 어떠한 분노를 풀 수 있는 대상이라고 느껴졌다.
석고는 다루기 굉장히 까다롭기 때문에 내가 섬세하게 다뤄줘야 하고 습도도 맞춰줘야 하고 아주 수발을 들어야되는 예민한 bitch다
그래서 석고는 약간 재수없는 고양이 같은데
돌은 코끼리 같달까
커다란 돌은 너무나도 무겁고 단단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걔한테 깝쳐도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있는 힘껏 내리치고 갈고 지랄발광을 해도 결국 먼저 바뀌고 지치는 것은 나기 때문에
우리 조카가 지 뜻대로 안되면 나를 때리듯이 나도 돌에게 마구 화풀이하며 덤벼보자 했다
그리고 나는 돌을 잘 모른다
잘 모르는 대상이기 때문에 사람과 똑같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노에 대해 더 얘기하자면
뭔가 사회와 현실에 대한 분노 이런 거대한 것 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느끼는 이상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남자 작가들이 만든 조각을 보면 화가 난다
왜냐면 내 체력으로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여자의 체력에서는 나올 수 있는 정도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남성적인 조각을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내 이름 때문에도 그렇지만
내 작업 성향을 보고 남자라고 당연히 생각하다가 나를 보고 여자라서 놀랐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마다 뭔가 그 남성스럽다는 느낌을 더 밀어붙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의 성별에서부터 이미 한번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되니깐
그리고 난 귀여운 것이 싫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여운거에 환장하는데
작품에도 귀여운 요소가 있으면 다들 좋다고 난리다
근데 나는 그런 귀여운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멋있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거는 뭔가 반칙같달까?
왠진 모르겠지만 그런 반칙 같은 걸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어쩔수 없이 내 작품도 하고 보니 귀여운 구석이 있더군)물론 이런 어쩌구 저쩌구의 생각으로 시작 되었지만 현실은 좆나게 힘들었다.
일단 개쫄보인 나한테 김포에 4시간씩 매일 왕복 운전하는 것부터가 큰 스트레스 였으며
전신장화, 마스크, 보안면, 장갑 등 개 답답한거는 죄다 끼고서는 물튀기고 가루 날리면서 존나게 무겁고 무서운 공구들을 써가는 것은
개저질 체력에 허리디스크 수술까지 한 나에게는 정말이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석조에 쓰이는 공구는 망치 하나여도 졸라게 무거워서
나중에 원래 쓰던 일반적인 망치 들었을때 플라스틱으로 만든 줄 너무 휙휙 가볍게 느껴지더라
암튼 망치 하나도 드는게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내가 ‘여혐 망치’라고 이름 붙여줬다
전에 어떤 페미들이 아이폰 요즘 크게 나온다고 여자 손에 맞지 않는 사이즈라서 여혐이라고 했다가 욕쳐먹었는데
나도 그래서 그 망치를 여혐 망치라고 이름 붙여주고 가벼운 망치는 페미 망치라고 이름 붙여줌
그 얘기를 듣고 진원 오빠가 기가 막힌다고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는데
언제 같이 밥먹으러 가고 있는데 어떤 공구점 간판에 ‘페미 집진기’라고 써있는거임 ㅋㅋㅋ
그래서 내가 오빠 페미 집진기가 뭐에요 하니깐
응? 나도 모르는데 니가 생각하는 그런건 아닐꺼 아니야 해서
검색해봤는데 집진기 브랜드 중에 Femi라고 있었음 ;; ㅋㅋ
쨌든 석조 공구들은 넘 여혐인 것 팔 졸라 아파근데!!
그래도 즐거웠던 것은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
일단 나는 보통 창문도 없고 존나 춥고 더워서 밖에 해가 쨍쨍한지 비가 오는지 태풍이 오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개병신같은 학교 실기실 안에서만 작업하다가
햇살 가득하고 딱 적당히 따스하고 하늘이 잘 보이고 산에 둘러싸인 곳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힘들지만 그 힘듦 조차도 아름다워 보였달까
역시 인간은 캘리포니아 가서 살아야된다 이말이여
그리고 내가 쉽게 지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고마운 서진원 선생님 덕분
어렵게 꾸민 작업실도 내어주고 공구도 빌려주고
내가 뭐 하나 시범 보여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숨도 안돌리고 묵묵히 끝낼때 까지 깎고 갈고
역시 석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걸 보고 깨달았고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나는 남한테 그렇게 안해줄 것 같어...
나같은 개놈자식한테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베풀어준 정말 고마운 사람
그리고 좌대 제작과 설치에 도움을 준 박종호 스승님
이 스승님에게는 이것 뿐만 아니라 뭐 셀수없는 것들을 도움 받아서 다 말할 수도 없지만
항상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
나는 사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데(그냥 겸손하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남들도 그렇게 말함) 운이 좋은 걸까
어쨌든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나 작업을 하면서 든 생각, 제목에 대한 생각 등 정말 여러가지 갈래가 있었지만
다 말하면 재미 없자너
그리고 1월에 있을 개인전에서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시도 똑같이 제목이 Vanilla일 예정 그리고 전시되는 작업도 모두 제목이 Vanilla
그러니 지금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개인전 준비에 열중하자 앞으로 제니퍼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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