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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일기 2022. 10. 30. 14:53

    어제는 지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전날 너무 피곤해서 안대를 쓰고 일찍 잠에 들었다.
    그런데 삐-하는 소리가 들려서 깼고, 곧 침대가 흔들렸다.
    혼자 있는 집에 안대를 쓴 상황에서 침대가 흔들리니 누가 흔드는 건가 순간 무서워져서 삼초 생각한 후 안대를 벗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길래 안도하고 시계를 보니 아침 8시20분경, 지진인 것 같아 검색을 해보니 지진이 났다고 한다
    사실 미국에 살때는 흔하게 겪던 일이었지만 이걸 한국에서 겪은 건 처음이어서 놀랐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간만에 일정이 없는 주말 아침에 뜻하지 않게 깨게 돼서 짜증이 났다.

    그렇게 강제로 하루를 일찍 시작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산책을 갔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산책길은 할로원 파티를 하고 있었다. 대낮에도 분장을 한 성인들이 많았고 좀 허접한 마술쇼와 키다리 아저씨들이 있었지만 애기들이 엄청 좋아하는 것 처럼 보이길래 아가들을 구경하며 흐뭇하게 산책을 했다.
    친구도 카톡이 와서 오늘 이태원 길거리에서 글리터 화장 해주고 7000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가격 괜찮은거 같냐고 물었다
    사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야 그 북새통에 무슨 고생이냐 졸라 춥고 힘들듯'이었지만
    들뜬 사람한테 찬물 끼얹는 것 같아 그냥 '응 괜찮네'라고 답해주었다.

    걷는데 몸이 너무 찌뿌둥하고 요즘 다리에 자주 쥐가 나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그러고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방광이 아려오는 것
    익숙한 이 느낌은 졸라게 느낌이 안좋았다. 왜냐면 급성 방광염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
    전에 방광염으로 응급실까지 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방광염은 내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큰 고통이자 가장 두려운 것인데, 전에 여러번 걸리면서 곧장 병원에 가서 약을 먹지 않으면 지옥을 맛본다는 것을 알아서 이러다간 안되겠다 싶어 토요일에 하는 병원을 미친듯 검색, 다행히도 집 근처에 오후4시까지 하는 곳이 있어 바로 달려갔다. (이럴 땐 대도시에 사는 것에 감사함)
    병원에서 소변검사를 하러 소변을 보는데 완전 갈색, 이러다가 나중엔 피가 뚝뚝 흐르면서 죽을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바로 오길 잘했다 싶었고 처방받은 약을 때려넣고 집에 왔다.
    원래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몸이 너무 안좋아서 취소하고 일단 잠을 잤다.

    8시쯤 깨니 통증은 한결 나아져있었고 물을 왕창 마셨다. 요즘 너무 신경 쓸 일이 많았어서 그런지 면역이 나빠졌구나 싶어서 쉬길 잘했다 생각을 했는데
    인스타를 보니 재밌고 멋진 코스튬을 입고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길래 집에만 있었던 것이 약간 후회스럽기도. 그래도 쉴땐 쉬어야지 하고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12시쯤 졸려서 이제 자야지 하고 누워서 핸드폰을 켰는데, 속보가 떴다.
    이태원 압사 사고 추정? 이게 무슨일이야 하고 보니 사상자가 100여명인 것 같다고
    원래 이럴땐 언론 보도보다 트위터가 빠르기 때문에 트위터를 보니 세상에...사람들이 꽉찬 이태원 거리 풍경과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런데 몇명이 아니라 수십명...
    내가 뭘 보고있는 걸까 잘 이해가 안됐는데 영상들을 보다보니 생각보다 사태가 훨씬 심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이태원 간다는 친구 생각이 나 전화를 해보니 자기는 녹사평역 쪽이라서 괜찮다고, 구급차가 지금 너무 많아서 이거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하길래 놀랐다.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심각성이 잘 안와닿은 건가
    아무튼 다행이니 전화를 끊고 트위터를 보는데, 실시간으로 소방관들이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모포를 덮고..
    몇키로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허망하기도,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숨이 턱 막혔다.
    나도 압사 당할 뻔 한적이 있기 때문에 그 공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중2때 에이브릴 라빈이 내한에 친구랑 간 적이 있다.
    내가 친구랑 가는 첫 콘서트 였기도 했고, 에이브릴 광팬이기도 했고, 혈기왕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들떠있었다.
    당연히 스탠딩석으로 갔고 콘서트장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소극장 크기) 나같이 한껏 흥분한 10대,20대들이 가득했다.
    꽉차있던 스탠딩석에 처음 있어봐서 재밌기도 했고, 나는 키가 커서 견딜만 했다. 친구는 작아서 잘 안보인다고 했지만
    그런데 에이브릴이 등장하자 갑자기 사람들이 뒤에서 앞으로 밀었고, 체격이 좋은 나도 건장한 남자들이 막 밀치니 그 힘을 버틸래야 버틸 수가 없었다.
    급격히 밀리면서 몸이 앞으로 쏠리고, 하체는 움직이지 못하는데 상체가 앞으로 떠밀리면서 나와 친구를 포함해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사람들 밑에 깔렸다. 신발은 없어졌다.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고, '여기 사람 깔렸어요!' '살려주세요!'하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시끄러운 노래 소리에 공연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 더욱 무서웠다
    이렇게 죽는건가? 나는 밑에 깔려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고 친구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친구는 떠밀려갔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려고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나려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5분 후, 갑자기 노래 소리가 멈추고 경호원들이 모두 뒤로 가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서서히 엉켜있던 사람들이 풀어지면서 나도 두발로 설수 있었는데, 어떤 여자가 앞에서 실신해 실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친구는 찾았는데, 우리 둘다 신발은 없어진 상황.

    정신을 차려보니 에이브릴은 무대에서 사라짐.
    경호원이 '여러분 이렇게 서로 밀면 공연 취소해야 합니다!'라고 소리치니 다들 '네~~'하며 질서정연해짐.
    그렇게 한 이십분 정도 흐르고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에이브릴이 등장해 'I love how every time I come, they have to stop the show because you guys get too excited!'라고 하는 것. 괜찮냐 소리 하나 없이 공연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해 졸라 황당했지만 걔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던 듯 하다.
    아무튼 다행히 경호원들의 저지가 있었고 공연장이 작아서 사태가 빨리 수습돼 공연은 잘 마무리 되었는데, 진짜 그 순간은 너무 공포스러웠다. 사람들에게 깔려죽는다는게 이런거구나 싶던. 엄청난 무게가 위에 짓눌리면 비명 소리 조차 낼 수가 없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08090121545877455

    에이브릴 라빈 공연중 사고관객,구급차서 의식회복 - 스타뉴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팝스타 에이브릴 라빈(24)의 내한공연 '에이브릴 라빈 라이브 인 코리아' 도중 응급실로 실려 간 10대 여성 관객이 큰 ...

    star.mt.co.kr

    집에 와서 기사를 찾아보니 다행히 부상자는 1명이었고 의식을 회복했다고. 정말 천만다행.
    그런데 정말 죽을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아주 작게만 기사가 나서 놀랍기도 했다.
    그 이후로 압사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 콘서트를 가면 항상 펜스 근처 자리로 가고, 지하철 붐빌때도 절대 가운데로 가지 않았음.

    십년 넘게 전 일이라 점점 잊혀져갔던 일이었는데 얼마전에 트래비스 스캇 공연 참사 기사를 보고 다시 그 기억이 떠올라 괴롭기도 했다.
    왜 이런일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지...

    그런데 이 일이 이태원에서 바로 어제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사실 바로 그 전날에도 이태원에 갔었다. 이태원에서 있던 일에 늦어 저녁6시반쯤 이태원역에서 내려 막 뛰었는데 할로윈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어후 이런덴 놀러오면 안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수없이도 지나갔던 해밀턴 호텔 옆...바로 그 자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아무튼 12시에 뉴스를 처음 접하고 첫 브리핑을 보니 사망자 2명, 너무 놀라서 계속 기사를 찾아보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들을 접하다가 사망자 59명이라는 2차 브리핑에서 저절로 헉 소리가 나서 심장이 쿵쾅거렸고,
    그렇게 잠들지 못하다가 146명이라는 3차 보도에서는 손이 떨리고 뇌정지가 왔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던 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며 충격에서 슬픔으로 전이되었고, 뭐라고 말을 뱉기보다는...소화해야했던.
    그렇게 한 5시까지 뉴스를 보며 잠에 들지 못했다.

    사실 아직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웃을 수가 없다. 뉴스만 내리 보고 있자니 계속 반복되는 내용에 더욱 숨이 안쉬어지는 것 같아 일단 요리를 하고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딴짓들을 해봤다. 그런데도 머릿속이 뿌옇다. 글이라도 적어본다.
    이따 가야하는 저녁 약속이 있지만 가서 즐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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