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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기 2022. 10. 23. 16:35

    오늘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기 포스팅 하려고 저장해둔 글이 여러개 있는데, 지금은 갑자기 돈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졌네요.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돈은 어떻게 버나?'일 것 입니다.

    왜냐면 국내 미술계는 돈이 존나게 없는 가난한 곳이기 때문이죠.

    아티스트 토크를 할때도 학생들에게서 주로 나오는 질문은 도대체 돈 어떻게 버냐는 것 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다들 어떻게 어떻게 해나아가는 것 같은데,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지 시원하게 밝히는 적은 잘 없죠.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일단 저부터 결론을 말하자면, 저는 지원금+부모님 일 것 입니다.

    알바는 따로 안해요.

     

    전에는 돈버는 일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소중한 나의 청년기 이기 때문에 이 황금같은 시간을 돈 버는데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왜냐면 체력은 갈수록 안 좋아지기만 할거고, 나의 에너지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계속 뭔가 폭발해내고 싶고, 뭔가 다 씨발 불만도 가득하고, 쏟아내고 싶은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 에너지는 창작에만 쏟고 싶어요. 그리고 아직은 내가 부양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죠.

     

    어쨌든 저는 복 받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할 것 입니다.

    부모님이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평생 부족한 것은 없이 살았어요. 엄마는 어릴 때 부터 사탕 하나 장난감 하나 잘 사주지 않았는데, 그래도 내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있으면 그런건 고심 끝에 돈을 대줬어요.

    예를 들면, 고딩 때 저는 아이슬란드에 한창 푹 빠져서 엄마한테 나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아이슬란드에 꼭 가야한다고 난리를 쳤더니 알겠다고 하고 진짜 보내주셨어요. 그렇다고 좋은 호텔 좋은 비행기 타고 간건 아니었고 환승 두번 해서 30시간 넘게 걸려서 가는 가장 싼 비행기에 전세계인의 암내가 섞인 유스호스텔에서 잘 정도의 경비를 줬지만 뭐 가긴 갔잖아요. 가서 할 것도 다 했구요.

     

    일단 작가 생활을 하기 까지 어떻게 돈이 대질 수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그냥 관성적으로 대학원을 갔어요. 대학원비는 부모님이 다 지원해주셨어요. 가서 학교에 있는 작업실을 열심히 썼고 한달에 40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으며 이것저것 잠깐 알바도 하면서 재료비는 대충 해결했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전시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대관료가 존나 창렬인거에요. 그래서 무작정 공간들을 검색해서 그 중 한 곳을 찾아가 전시 시켜달라했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었는데 좋은 분을 만나서 대관료 한푼 받지 않고 기획전을 하게 됐죠. 그때는 그 고마움을 잘 몰랐는데, 지금 되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경력 하나 없는 놈을 위해 공간을 내주고 거기 이름을 걸고 전시를 열어주는 일은 참 쉽지 않은 건데, 저는 막상 그때 그런 배려도 모르고 오만하기만 했던 것 같네요.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의지가 불타게 돼요.

     

    그리고 대학원을 수료하고 나서는 바로 레지던시에 갔는데, 그게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냥 대충 인스타로 검색해서 찾은 레지던시였는데, 작업실도 주고 창작지원금도 주더라구요. 총 2년 있었는데 첫 해는 300만원, 두번째 해는 500만원을 지원해줬어요. 그걸로 신나게 재료들을 다 샀죠. 사실 그것만으로는 전시까지 하기 쉽지는 않기 때문에 지원금 공모를 이것저것 찾아서 지원하기도 했구요. 아마 지원한게 50개 정도고 된게 3개 정도일 거에요. 그래도 거기서 받은 몇백만원으로 또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만 쓰면 내가 다 돈을 따서 어렵게 한 것 같지만,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이때도 부모님한테 월 40만원 정도의 용돈은 받고 있었고, 또 차도 사달라고 졸라서 중고차도 샀어요. 유류비나 유지비는 제가 벌어서 쓰는 조건이었지만 차가 생기니 정말 작업하기 10배 정도는 수월해지는 거에요. 이때도 저는 뻔뻔하게 엄마한테 내가 얼마나 차 없이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아느냐, 작가가 되려면 차는 있어야 된다고 큰소리를 쳐서 설득했죠. 저는 미친놈이에요..애 절대 안낳아야지

     

    아 그리고 또 그 외에 했던 일들을 떠올리지면 아트테리어라고 작가와 점포를 연결해서 작가가 점포의 인테리어를 개선해주는 그런 지역사업이 있는데, 그것도 월 180만원씩 3개월 지원해주기 때문에 거기서도 많은 경제적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간간히 한영 번역 알바도 했는데 그건 큰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공부도 되고 쏠쏠하게 간식비 정도 벌 정도는 됐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여러 개인전과 기획전들은 모두 대관료 한번 내지 않고 공모나 섭외를 통해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시를 하는데 돈이 안드는 것은 아니고 할때마다 돈이 깨져요. 아티스트피는 받으면 10만원 정도 이지만 그 정도 조차 주는 데는 잘 없고요. 운송비, 촬영비 등 생각보다 돈 들데가 많아요. 뭐 공간 운영하는 데도 다 똑같이 힘든 건 알겠지만 전시를 하면 할수록 미술계는 체계가 안잡혀도 너무 안잡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불만들을 혼자 씩씩대며 삭히기도 하고 대놓고 지랄하기도 했고, '다음 번엔 돈 안준다면 절대 안해야지!' 결심이 들다가도 또 막상 제안이 들어오면 능구렁이 같이 페이를 언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용기있게 말하지 못하고 넘기기도 했구요. 그런 제가 부끄럽습니다. 근데 인간은 뭐 원래 그런거니 앞으로 더 잘하면 되겠져.

     

    그러고 나서는 근래에 마법 같이 작업을 구매해주는 분들이 생기기도 했어요. 정말 마법 그 자체인게 한국에서 나같은 작업은 판매 불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있긴 있더라구요. 그런 분들을 만날 때 마다 작가로써의 어떤 책임감이 점점 쌓이는 걸 경험했어요. 사실 누가 내 작업에 대해서 뭐라고 평할때나 말로 어떤 기대감을 표할 때는 그냥 그렇게 듣고 흘렸는데, 이걸 귀한 자기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생기니깐 확실히 경각심이 확 생기는거에요. 역시 자본주의의 노예. 돈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없나봅니다. 

     

    물론 제 작업은 아직 가격도 낮고 팔린 것도 많지 않기 때문에 제 삶이 실질적으로 더 나아질 정도의 돈이 되지는 않아요. 그냥 용돈 정도죠. 그래서 돈은 어떻게 버냐구요? 결국 또 부모님 입니다. 엄마는 집 월세를 지원해주고 있고, 아빠는 제가 개인전을 열때마다 수고했다고 돈을 조금씩 줘요. 아, 그리고 생활비는 조카를 베이비시팅하며 언니에게 지원을 받습니다. 월 40만원 이지만 사실 저는 술 먹는 거 외에는 돈을 거의 안 쓰기 때문에 충분해요. 전에 어떤 작가 토크 때 들었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도 어김없이 돈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그분이 작가로 살면 그저 '남들이 다 하는거 안하면서 살면 살아진다'고 하더라구요. 그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남들 다 가는 맛집, 다들 사는 가방, 옷, 다들 가는 호캉스 안가고 살면 되는거에요. 그런게 사실 나한테 필요한지도 모르겠고요. 조금 허세같이 들릴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작업을 하는 순간이 호캉스고 오마카세 입니다. 많은 돈을 소비해서 얻게 되는 충만함을 저는 작업을 통해서 충분히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끔은 오마카세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제는 진짜 웃긴 꿈을 꿨어요.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나왔는데 알고보니 걔네 집이 완전 부자였던 거에요. 걔네 집 내부를 보게 되었는데 한 200평 짜리 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아 시발 얘랑 왜 헤어졌지??하면서 존나 후회했어요. 그런 걸 보면 저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어찌보면 작업을 하는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없다!'라고 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고요. 그치만 작가라고 꼭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법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깐, 저는 작업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도 계속 찾아보려고 해요. 나의 audience가 있긴 한데, 미술계에선 이게 돈이 되지 않으니 작가는 그걸 monetize하질 못하잖아요. 근데 그걸 안된다고 생각해서 안하는 것 아닌지, 방법을 좀더 갈구해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런 방법들을 가끔가다 멍때릴때 상상하곤 하는데, 언젠간 실천해보겠습니다. 뭐 큰 돈을 벌겠다는 건 아니지만, 돈이 있으면 훨씬 삶이 편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기 쉬운 상황이 되는 것은 맞으니깐요.

     

    돈에 대한 고백(?)을 하는 이유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작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의 큰 부분은 능력, 재능 이런게 아니라 '경제적 여유'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래서 자만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능력치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그런 변화들에도 잘 대처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저는 제가 지금 떵떵거리며 작업을 할 수 있는게 제 개인의 능력치는 생각보다 적은 이유이며 부모님의 서포트가 크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쩔 수 없어요. 물론 저보다 훨씬 더 잘사는 부모님을 가진 작가들도 수두룩하게 많고, 저보다 좋은 환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그들을 배아파 하지도 않을 것 입니다. 인생은 그냥 그런 거잖아요.

     

    카페에 앉아 주변을 스쳐갔던 여러 사람들을 떠올리다 문득 돈에 대한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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